심장 영상과 함께한 인생: 나는 어떻게 심장영상학의 포로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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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본과 2학년 시절 저는 서울의대 야구부의 반장으로 거의 모든 정열을 야구에 바치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마다의 작은 개인 연습, 주말이 기다려지는 단체 연습 등 야구는 저의 학창시절 젊음을 흥분 시키는 자극제였던 것입니다. 지제근 교수님과의 첫 만남이 있던 그 날도 방과 후 야구반 동료들과 모의 게임을 하며 연습 중이었습니다. 지 교수님은 교정을 가로질러 저희들에게 성큼성큼 오시더니 야구를 같이 할 수 있겠는지 물으셨고, 우리는 젊고 이지적이고 야구실력도 대단하셨던 지 교수님의 매력에 사로잡혀 자연스럽게 운동을 같이 하며 멋진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만남이 제가 앞으로 심장영상학도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지 교수님은 neuropathology를 주전공하시면서, teratology를 부전공으로 하고 계셨었는데, 학생 강의에서 보여 주셨던 잘 정돈되고 카리스마 넘치는 강의 모습은, 야구를 같이 하시던 소탈한 모습과 겹쳐지며, 어린 제 마음을 순간 사로 잡았고 아마 이때 느꼈던 머릿속의 신선한 충격이 제가 ‘의과대학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발점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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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과 4학년이 되어 저는 영상의학과와 흉부외과에 각각 2 개월씩의 elective course를 신청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이미 제 마음 속에는 심장학이라는 대주제가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 선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흉부외과 주임교수이셨던 이영균 교수님과, 서경필 교수님, 노준량 교수님은 어느 한 분도 예외 없이 심장외과학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4학년 학생인 제게 정말 따뜻한 배려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 그로 인해 저는 학생 신분으로는 특별 대우를 받아 수술 scrub을 하면서 수술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인턴 지원시 (그 당시는 인턴 지원시 이미 과를 정하였음) 흉부외과와 영상의학과의 사이에서 많은 번민을 하게 됩니다. 결국은 “양반은 발에 흙을 묻히고 살지 않는 법인데, 자네가 평생 발에 피를 묻히고 살 생각인가?” 하는 영상의학과 주동운 교수님의 지엄하신 질책과 한만청 교수님의 레이져 눈빛에 압도되어 결국 흉부외과를 포기하고 영상의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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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을 마치고 전공의 (당시는 수련의) 1년차가 되어 영상의학과에 출근한 첫날 저는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됩니다. 흉부외과 이영균 교수님의 비서가 저를 찾아와서 교수님의 지시라면서 교수님께서 그 동안 발표하셨던 논문 별책 모음집을 저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흉부외과를 지원하였다가 마음을 바꾼 ‘배신’에 대해 늘 부담을 느끼고 있던 저를 질책 하시기는커녕 오히려 끝까지 따뜻한 관심을 보여 주시는 교수님의 큰 산과 같은 모습에서 저는 정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큰 선생님의 모습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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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저는 1년차 때부터 심장영상학에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게 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는 당시 2년차이셨던 유시준 교수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한 년차 위였던 유시준 선생님은 심장영상학에 관한 한 저의 거의 유일한 consultant이자 선생님이셨습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재미있는 case, 논문, 교과서 review 등을 통하여 의견을 교환하였고, 유시준 선생님의 해박한 지식과 칼로 자르는 듯한 명확한 영상 해석에 저는 감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물론 때로는 우리 둘 사이에 의견이 엇갈려서 치열한 학문적 논쟁을 하게 되고 어떤 때는 논쟁이 도를 넘어 약간의 감정이 이입되는 수준으로 내닫기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나 논쟁이 끝나면 우리는 늦은 밤을 마다 않고 병원 앞의 원남통닭집으로 달려가 시원한 맥주와 맛 진 치킨으로 모든 찌꺼기를 풀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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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시절 저의 첫 번째 논문은 “Double-chambered right ventricle”에 대한 case report였습니다. 당연히 teratology를 전공하셨던 지제근 교수님께 자문을 구하게 되어 수시로 지 교수님과 상의를 하게 되었는데, 학문적인 큰 흐름은 물론 논문 작성시 정관사와 부정관사의 사용법까지도 지적해 주시던 그 때의 자상한 가르치심이 아직도 제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한 연유 때문이었는지 제가 전공의 2년차가 되던 해 어느 날 지제근 교수님께서 저를 찾으시더니 “내가 가지고 있는 태아 심장 specimen들에 대한 분석 연구를 같이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제안을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영상의학과 전공의로서의 바쁜 시간을 쪼개어 거의 매일 퇴근 후 병리과로 내려가 선천성기형을 가지고 있는 태아 심장에 대한 관찰과 dissection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넓혀 가며 6개월 여의 시간을 심장 specimen 연구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 교수님은 자신이 맡고 계시던 대학원 teratology course에서의 선천성 심장 질환 부분 강의를 저에게 맡겨 주셨고, 전공의 2년차였던 저는 저를 믿고 중책을 맡겨 주시는 교수님의 배려에 가슴이 터지는 듯한 감동을 느끼며 철저히 강의를 준비하였고 열성적으로 강의에 임하였습니다. 학문이 무엇인지, 어떻게 접근하는 것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진정한 학문의 세계에 서서히 들어서게 되었고, 차츰 성장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며 ‘신뢰는 사람을 키운다’는 말을 절감하였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존경하던 교수님의 신뢰를 한 몸에 받으며 교수님과 같이 연구하고 교수님의 강의를 맡아 하던 그 시절이 제 일생에서 가장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던 때였다고 이제 정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도 회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저는 제 일생을 바치게 될 심장영상학의 포로가 되었고 이제 그 행복한 포로생활은 40년을 넘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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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는 좋은 선생님, 좋은 동료, 그리고 좋은 후배를 만나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에 동의 하면서도 그 본질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좋은 선생님이나 동료 그리고 후배는 만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을 만든다니요? 라는 의문을 가지시겠습니다만, 어떤 선생님이든 그 분들이 가지고 계신 훌륭한 점을 발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 분들의 모든 것을 배우는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은 시작되고 마음 저 구석에서부터의 모든 것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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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문을 닫아 걸고 있을 때, 혹은 자신의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경계하는 자세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후배나 제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들은 몇 배 혹은 몇 십 배의 보상을 받고 또 그것을 통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을 “가속적 선순환”이라고 부릅니다. “너의 모든 것을 다하여 남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마음을 깨끗이 하고 오로지 한 뜻으로 정진하여야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장자의 가르침도 아주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가 전문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꼭 기억해야 할 아주 가까운 진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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